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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적응장애

by 감씨들 돌보미 2022.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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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철만 되면 불안하고 초조해서 잠을 못 자요



"노 이동 씨, 보고서에 게재된 소비 성향 분석이 좀 이상해요. 수정하는 게 좋겠어요."

"아 잘못된 부분이 있나요? 죄송합니다. 다시 작성하겠습니다."

직속 상사인 과장에게 불려가 면박을 당한 뒤 퇴짜 맞은 보고서를 받아들고 제자리로 돌아온 노 이동 씨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보고서에는 과장이 빨간 펜으로 수정 지시한 내용이 가득했다. 

'요즘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엊그제도 선임 대리로부터 정신을 어디에다 두고 일하는 거냐고 야단을 맞았는데, 오늘 또 과장에게서 지적받았으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옆자리에 있는 후배가 힐끗힐끗 노 이동 씨를 쳐다봤다. 그런 눈길도 부담스러웠다. 올해에 입사한 후배를 잘 가르쳐야 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오히려 자기가 후배에게 배워야 할 것만 같다. 점점 더 위축돼 가는 자기 모습이 안쓰럽다.

지난해 12월 정기 인사이동 때 노이동 씨는 그동안 일했던 부서를 떠나 다른 부서로 배치되었다. 익숙했던 업무에서 손을 떼고 전혀 해보지 않은 업무를 시작하게 된것이다. 상사나 동료들도 전부 바뀌어 서먹서먹한 데다 일까지 손에 익지 않으니 불안하기도 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극복하고 새 부서에 잘 적응할 자신이 있었다. 입사 이후 두 번의 인사 평가에서 매번 최상위 등급인 S등급을 받았던 터라 회사에서도 그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승진하려면 여러 부서 업무를 두루 익히고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래, 새로 시작하는 거야. 어디에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나는 다 잘할 수 있어!'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막상 새로운 업무를 하려고 보니 너무 낯설었고 자신의 성향과도 잘 맞지 않았다. 잘하려는 욕심이 지나치다 보니 안 해도 될 실수까지 하게 되었다. 새로운 업무에 대한 설렘과 기대는 익수하지 않은 업무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으로 바뀌었다. 직전 부서에서 에이스로 손꼽히던 자신이 졸지에 부서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내가 이 부서를 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만 없으면 우리 부서는 최고의 부서일 텐데.'

'상사들 눈치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후배들 보기도 창피한데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의 나날이 길어지면서 노이동 씨는 매일 아침 출근길이 마치 고행길처럼 버거워졌다.



연말이 되면 많은 기업에서 인사이동이 이루어진다. 한 해의 실적과 공과를 평가해 포상하기도 하고, 승진이나 부서 이동  등 크고 작은 인사 개편이 단행된다. 상을 받고 승진하는 사람들은 영광의 계절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좌절의 계절이 될 수밖에 없다. 직장인에게 승진과 포상은 자존감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렇다 보니 연말만 되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직장인들이 인사이동으로 인한 각종 스트레스 떄문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 진료하는 과정에서 적응장애 진단을 받는 비율이 여느 떄보다 크게 상승하는 시기도 바로 이즈음이다.

 적응장애란 어떤 스트레스나 충격적인 요인이 발생하고 나서 3개월 이내에 우울, 불안, 불면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학생의 경우 새 학년을 시작하면서 혹은 학업 떄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적응장애가 나타나기도 하고, 직장인의 경우 새로운 회사에 취직하거나 부서 이동을 한 다음 또는 은퇴 이후에도 많이 경험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환자의 20퍼센트가량이 적응장애라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질환이다. 만성적인 경과를 밟는 경우 17퍼센트 이내로, 스트레스가 지속되지 않는다면 6개월 이내에 대부분 호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과서적으로 단기간 동안 정신 치료나 인지치료가 주로 추천되고, 약물은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만 처방되는 예후가 비교적 좋은 정신질환 중 하나다.

 적응장애로 내원하는 분들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과 비슷하다.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던 중 갑자기 파도가 일어 물을 마시게 되면 놀라서 수영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허우적거리는 경우가 있다. 별것 아닌데도 당황해서 그런 것이다. 이처럼 적응장애 환자들은 지금 겪고 있는 스트레스나 충격을 충분히 이겨낼 힘과 강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놀라고 당황하는 바람에 이 상황을 내가 바꾸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헤어날 방법이 없다고 비관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러운 해결 방법을 찾기보다는 항상 극단적인 방향이나 결과만을 예측한다.

'내가 평생 이렇게 힘든 곳에서 시달리며 일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길이 없어.그만두는 방법밖에 없는 거야.'

이런 식으로 생각을 몰아간다. 막상 과거를 떠올리면 지금처럼 힘든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지금은 그떄와 다르고 내 상태도 그때와는 다른 것 같아 이겨낼 수 없다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적응장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필요한 건 지금 힘들어하는 나 자신을 이해해주는 것이다. 노이동 씨처럼 다른 부서로 옮겨간 경우, 낯선 환경과 업무 때문에 적응이 어려운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심지어 일주일 정도 휴가를 다녀온 뒤 회사에 출근하면 생소한 곳에 와 있는 느낌이 들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예전같이 일하기 어려운 어색한 감정을 갖게 되기도 한다. 매번 하는 일인데도 깜빡하거나, 집중이 되지 않아 졸음이 찾아온다. 다시 적응하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잠깐 자리를 비웠다 와도 이런데, 아예 부서를 바꾼 경우라면 자신에게 충분히 시간을 주는 게 마땅하다.

사람들은 좋지 않은 상황이 닥치면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내부요인이라 하여 나에게서 원인을 찾기도 하고, 외부요인이라 하여 타인이나 환경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적응장애가 생기는 이들을 보면 과도하게 내부요인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자꾸 나에게서 원인을 찾다 보면 적응하지 못하는 데 대한 분노의 화살이 나에게로 향하면서 우울감이 찾아온다. 굳이 원인을 찾으려 들지 않아도 된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다. 나는 지극히 정상이다. 자책하지 말자 간혹 주변에서 이러한 화살을 나에게 돌리는 수도 있다. 적응하지 못하는 걸 이해해주지 않는 것도 나를 비난하는 것이고, 이해하고 위로한다면서 "왜 그런걸로 힘들어하고 그래?", "적응하려면 처음에는 다 힘들기 마련이기"라고 이야기하는 것 또한 나를 탓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억지로 우울이나 불안을 느끼지 않으려고 할 게 아니라, 우울이나 불안을 느끼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위로하는 게 중요하다. 부서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고, 적응하지 못하니까 우울하거나 불안해할 수 있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건 정상적인 일상의 삶을 유지하는 일이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고, 매일 산책처럼 가볍게라도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게 좋다. "이런 판국에 밥이 넘어가나?", " 한가롭게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어?"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말 힘든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이 같은 일상이 유지되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고 힘이 들어도 식사 시간이 되면 밥을 먹고, 운동할 시간이 되면 운동하면서 나에게 숨 쉴 틈을 만들어 줘야 한다. 

나에게 변함없이 지지를 보내주는 좋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야 한다 우울이나 불안 등의 감정 변화가 있을 때 주변에 나를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들, 즉 지지체계가 있느냐 없느냐가 예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좋지 않은 기분이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반가운 사람들과 교류하는 건 어떤 치료 약보다 탁월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멋진 분위기와 아름다운 음악, 맛있는 음식과 달콤한 음료 그리고 재미있는 대화가 곁들여진다면 최상일 것이다.

지금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 생각되고, 앞으로 계속 이렇게 힘들까 봐 불안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분명 힘들었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힘들었을 떄도 상향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최상의 결과는 아니어도 지금 최악의 상황은 지나갈 것이다. 떄로는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상태가 나아지기도 한다. 지금 과거의 힘들었던 때를 떠올리며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지금의 상황 역시 미래를 위한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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