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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재택근무 불안감

by 감씨들 돌보미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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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김 대리는 입사 3년 차 직장인이다. 입사 동기 중 가장 먼저 대리로 진급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누구에게 뒤처지는 걸 싫어해 뭐든 열심히 하다 보니 항상 남들보다 조금씩 앞서 나갔다.

대리로 진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졌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10개월 동안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IT 기업이다 보니 집에서 일해도 업무 처리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필요한 회의는 인터넷 화상회의로 하고, 자잘한 의사소통은 SNS를 이용하면 되니 시간을 알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출퇴근 시간 콩나물시루 같은 전철에서 시달리지 않아 좋았고, 원치 않는 회식 자리에 불려 나가 억지로 술잔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재택근무 초반, 그녀는 정말 행복했다. 딱딱한 조직 문화 속에서 일하다가 자신만의 오붓한 공간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평소 그녀는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실수하면 안 돼.','남들보다 더 잘해야 해.'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온 까닭에 입사 이후 하루도 긴장을 늦춘 날이 없었다. 늘 긴장한 덕분에 누구보다 일을 잘 해낼 수 있었고, 결과를 인정받아 진급까지 하게 되었다. 재택근무는 그녀를 긴장감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한시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하다가 온종일 편안한 마음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자신을 향한 주변의 시선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그녀에게 점점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업무 효율이 예전 같지 않았다. 긴장감이 없어지면서 자신이 너무 느슨해졌다고 느낀 것이다. 처음에는 출근할 때처럼 제시간에 일어나 씻고 아침 식사를 한 후 정장은 아니더라도 편안한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책상에 앉아 점심시간, 휴식 시간을 지켜가며 퇴근 시간까지 정확하게 일했었는데, 요즘은 고양이 세수만 한 채 잠옷 차림으로 책상에 앉아 일하는 게 다반사다. 회의가 있을 때만 화장하고 옷도 갖춰 입는데, 그것도 상의만 그럴 뿐 하의는 잠옷 그대로다. 중요한 업무를 처리하고 나면 더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을 때가 많다. 그러면 노트북으로 영화를 찾아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내가 이렇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사는 사람이었나?'

'다른 직원들도 나처럼 지내고 있을까? 이러다가 나만 뒤처지는 거 아닌가?'

다행히 얼마 전 실시한 고과평가에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기는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했다. 입사 동기들이나 선후배들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들어 보면 다들 재택근무에 잘 적응하면서 나름 즐겁게 사는 것 같은데, 왜 자신만 자꾸 불안해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기도 하고, 성격을 탓하기도 하고, 생활 습관을 바꿔 보려고도 했으나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밤잠을 설치는 날도 많아졌다 코로나 사태가 완전히 끝나지 않는 한 재택근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데, 김 대리는 하루하루 스스로 대한 불만과 불안이 쌓여가기만 했다.







사회심리학 이론 가운데 귀인이론이 있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행동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추론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귀인' 이란 '어떤 행동의 원인을 어딘가에 귀속시킨다'는 뜻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지 원인을 찾아내 규명하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내부요인, 즉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행동 원인을 성격이나 기질 같은 내부로부터 찾아내려는 추론 과정이 있다. 또한 외부요인, 즉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행동 원인을 환경이나 상황 같은 외부로부터 찾아내려는 추론 과정도 있다. 어떤 행동의 원인을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앞으로 나타나게 될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 이와 같은 귀인 과정을 거친다.

  만약 누군가 몹시 불안해하고 있다고 치자. 그 이유를 두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저 사람에게 정말 힘든 일이 있었나 보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아, 원래 저 사람은 정신력이 저렇게 약하구나." 

첫 번째는 외부요인에서 원인을 찾는 추론이고, 두 번째는 내부요인에서 원인을 찾는 추론이다. 

위 사례의 김 대리는 코로나 사태라는 외부요인은 무시한 채 게으른 성격이라는 자신의 내부요인에만 집중하고 있다. 원치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누구나 화가 난다. 이럴 때 원인을 자신의 내부에서만 찾으려 하면, 자꾸 자신을 탓하게 되고, 자신이 싫어지기도 하며, 자신에게 실망하게 된다. 자신을 믿지 못하니 불만이 더 쌓이고, 불안은 갈수록 증폭된다. 화는 방향이 필요하다. 화를 낼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 할 경우, 분노의 방향이 나를 향한다.







사람에게는 자기 보호 편향이라는 게 있다.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자신의 내부보다 외부에서 원인을 찾고, 타인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타인의 외부보다 내부에서 원인을 찾는 방식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보호하려 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시쳇말로 '내로남불'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고과평가가 안 좋게 나왔다면 운이 나빠서 그런 것이고, 다른 사람의 고과평가가 안 좋게 나왔으면 실력이 별로라서 그렇다고 여긴다. 이런 편향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내가 너무 내부요인 혹은 외부요인에서만 원인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만약 내가 매사 내부요인에서만 원인을 찾으려는 엄격함을 유지하고 있다면, 때때로 외부요인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즉, 너무 내 탓만 하지 말고 남 탓을 하는 것도 자신의 자존감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필요한 일이라는 뜻이다. 만약 이게 잘되지 않는다면, 내가 처한 실제 상황이 아니라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 당한 상황이라고 가정해본다. 이럴 경우, 그 사람을 위해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이런 환경이나 조건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을 거야."

 아마 대부분이 이렇게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하고 위로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남에게 하듯 자신에게도 이런 태도로 임하면 되나. 나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사람이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외부보다 자신의 내부에서 계속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자기 보호 편향과 반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내 탓을 하고 자신에게 분노를 느끼다 보면 우울감이 발생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모든 행동과 결과의 원인을 내가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버리는 자세다. 원인을 명확히 찾아내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삶에는 원인을 알 수 없거나 찾기 힘든 일이 그렇지 않은 일보다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 이 점을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 내 정신력 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행동이나 결과의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환경이나 상황이 좋아지면 행동이나 결과도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자신감을 되찾는 게 필요하다.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다 보니 다른 사람보다 조금씩 앞서 나갔던 김 대리. 그녀는 지금 남들보다 뒤처진 게 아니다. 동료나 선후배 등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동일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김 대리에게 필요한 건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고 냉철하게 판단해줄 판사가 아니라, 내 편이 되어주고 나를 변호해줄 수 있는 변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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