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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회피성 성격

by 감씨들 돌보미 2022.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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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상황이 싫어서 내가 먼저 피해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에 성공한 신입사원 박수치 씨. 면접 후 최종 합격 소식에 그는 뛸 듯이 기뻤다.

매일 아침 새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남들처럼 일터로 출근할 생각을 하니 뿌듯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처음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을 때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그때는 아직 어린애였고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박수치 씨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한 가지 있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다. 어려서부터 낯가리는 아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래서 친구를 사귀기 힘들었다. 틈을 주지 않으니 남들이 선뜻 다가오지 못했고, 수줍음이 많아 스스로 남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했다. 중고등학생 때도 언제나 같이 다니는 몇몇 친구들하고만 밥을 먹었다. 방과 후에는 따로 만나는 친구가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늘 혼자 지내다 보니 속내를 털어놓을 만한 친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열심히 공부하며 성실하게 살았기에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회사생활을 하게 되면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서 팀워크를 맞춰 일해야 할 텐데 자신이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신입사원이라면 응당 선배나 상사들에게 붙임성 있게 다가가야 하고, 일 때문에 만나게 될 거래처 사람들과도 친밀하게 지내야 한다. 낯가림이 심한 그로서는 아무래도 자신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더군다나 낯선 사람들하고는...'

긴장과 불안 속에 드디어 첫 출근날이 되었다. 업무 교육 시간에도, 부서 배치를 받을 대도, 합류한 팀에서 첫 번째 회의를 할 때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딜 가나 낯설고 누굴 만나든 가슴이 두근거렸다. 종일 사진이 붙은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녀야 하는 것도 쑥스러웠다. 다른 신입사원들은 인사도 잘하고 스스럼없이 선배들에게 말도 걸었다. 사교성 좋은 사람은 벌써 팀 상사들과 커피를 마시며 웃고 떠들기도 했다. 박수치 씨는 회사 안에서도 자기만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수치 씨, 뭐해요? 내일 같이 점심 먹을래요? 두루두루 할 말도 있고."

 잠깐 짬을 내 자리에 앉아 있던 그에게 팀 직속 선배인 조 대리가 다가와 먼저 말을 붙였다. 

"네? 아뇨. 내일 점심때 선약이 있어서요. 다음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엉겁결에 그는 자신의 사수인 조 대리의 제안을 거절하고 말았다. 물어볼 것도 많은 데다 친해질 좋은 기회였는데,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까지 하면서 자리를 피한 것이다. 조 대리에게 일을 배워야 하는 처지에서 그와 친해지지 않으면 업무를 제때 익히기 어렵다. 박수치 씨가 먼저 친해지려 다가가고 밥 먹자고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사수가 내민 손을 뿌리치는 실수를 한 것이다. 

'아, 역시 나 같은 사람은 조직 생활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사람들과 어울려서 하는 일보다는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게 좋겠어.'

어렵사리 회사에 입사했을 때 맛봤던 기쁨과 행복도 잠시뿐이었고, 하루하루 출근하는 게 고역이었다. 마침내 박수치 씨는 회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혼자 있는 게 마음 편한 사람이 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을 피해 조용한 곳에서 사색하듯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 중에는 혼자 있는 게 좋아서 스스로 고립되는 사람도 있지만, 남들과 친하게 어울리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사람을 '히키코모리 하는데, 자신의 의지로 고립되는 히키코모리와 다르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낯가림이 심해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은 본인이 남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앟는다고 생각하지만, 깊이 분석해보면 자기도 남들처럼 사교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도 상처받는 게 두려워 관계를 회피하는 것일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친해지려고 다가갔을 때 상대방이 싫은 기색을 보이면 상처받는다. 그래서 나중에 친해진 다음 이를 빌미로 상대방에게서 생각지도 않은 상처를 받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심한 경우 ' 회피성 성격장애'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박수치 씨는 회피성 성격장애라고 진단할 정도는 아니지만, 진단을 내려야 할 정도로 심각한 사람은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게 어려워 대인관계가 빈번한 직업을 피하려 한다. 타인에게 비난당하거나 거절당하는 상황을 두려워하며, 수치심을 경험하지 않으려고 이러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이다. 사실 대인관계에서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비난당하거나 거절당할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은 그럴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거절당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미리 피한다. 그러나 이는 추측일 뿐이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다 보니 평소 습관대로 빨리 판단해서 결정하고 실제로 그런 상황이 닥치지 않았는데도 자기 자신을 비난한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려고 일부러 사람들과의 관계를 피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이런 성격을 극복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해야 조직이나 단체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성숙한 대인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먼저 나에 대한 상대방의 생각을 섣불리 예측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은 나에게 수치심을 줄 의도가 전혀 없는데, 나 혼자 지레짐작하는 것은 내 착각일 뿐이다. 이럴 떄는 매일 일기를 쓰면서 내가 어림짐작했던 상대방의 생각을 찾아보고, 다른 여러 가지 가능성을 평가해보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오늘 점심시간에 부서원 전체가 불고기 도시락을 주문했는데, 부장님 표정이 좋지 않았을 때 평소 같으면 '  아, 나 때문에 화가 나셨구나. 괜히 불고기 도시락을 주문했어. 이제 부장님이랑 잘 지내기는 틀린 거야' 이렇게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진실일 가능성은 100%가 아니라 30%일 뿐이다. 나머지 70%의 다양한 경우를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다. '불고기를 안 좋아하실 수는 있지만, 나한테 화가 나서 그런 건 아닐 거야.'

'도시락 때문에 표정이 안 좋으신 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는 거겠지.'

'내가 잘못 본 거야. 표정이 안 좋으신 게 아닐 수도 있어.'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찾아보면서 여러 가능성을 평가하면 섣부른 예측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동기와 친해지기','사수와 가까워지기' 이런 모호한 목표 말고,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 오늘 동기에게 먼저 인사하기' , ' 이번 주 안으로 팀장님과 5분 넘게 대화하기', '이달 안에 사수와 점심 식사하기' 등이다. 그래야 실천할 수 있다. 우선 편한 대상에게 시도해보는 게 좋다. 애매한 목표를 세운 뒤에 소극적으로 시도했다가 다른 핑계를 대면서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경계해야 한다.

간혹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그 정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생각만으로 불안이 줄어들 수도 있다. 아무 관심 없는 타인으로부터 숨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

회피성 성격인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파하려는 것은 수치심이라는 감정이다. 수치심은 어원적으로 '숨긴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에서 파생된 것으로 무언가로부터 숨기고 싶은 충동이 나타날 때 느껴지는 것이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내적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결국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이 자기를 부족하다고 여길 거라 판단하고, 타인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확인하는 상황이 두려운 것이다. 부족한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숨기려는 게 바로 회피성 성격의 특징이다. 하지만 타인을 의식하기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부터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나에게 주목하고 나를 사랑하며 살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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