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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목적 없는 질주

by 감씨들 돌보미 2022.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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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살고 있는데도 왠지 공허해요



정주행 대리는 오전에 처리할 업무를 일찍 끝내 놓은 뒤 점심때 월 먹을지를 궁리했다. 좀 더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문구도 잘 다듬고 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도 있었으나 그러기가 귀찮았다.

'구내식당에 가서 주는 대로 먹을까 아니면 회사 밖으로 나가서 맛있는 걸 골라 먹을까?'

정오가 되자마자 회사 문을 나선 그는 10분이나 외떨어진 식당에 가서 혼자 삼계탕을 먹은 다음 카페라테까지 한 잔 마신 후 1시 20분 전에야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오후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가 걱정이었다. 거래처도 돌아봐야 하고 미팅도 있었지만, 거래처는 다음에 돌아보기로 하고 미팅만 대충 끝냈다. 거의 말 한마디 안 하고 메모만 하는 회의는 따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퇴근 시간만 기다리던 그는 6시 정각 자리에서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로 갔다. 고등학교 동창 몇 명과 술을 마시기로 했기 때문이다. 거나하게 취한 그는 느지막이 집에 들어와 씻는 둥 마는 둥 침대 위에 쓰러졌다. 아내의 지청구가 귓가에 쟁쟁했으나 못 들은 척 누워 있었다.

'요즘 내가 왜 이러지? 일이 재미가 없어. 너무 따분해. 회사를 옮겨야 할까?'

 술을 많이 마셨는데도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그토록 다니고 싶던 회사인데 왜 적응이 되지 않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렴풋이 과거의 일들이 떠올랐다. 예전에도 그랬던 것 같다.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던 대학, 원하던 학과에 합격했음에도 기쁨이나 성취감을 맛본 건 잠시였고, 한 학기 정도 다니다 보니 흥미를 잃고 심드렁해졌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대학원은 학교와 전공을 바꿔서 갔다. 하지만 학부 때와 마찬가지로 입학 이후 전공에 매력을 느낀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러고 보면 그는 매사에 만족감을 잘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럴듯한 목표가 정해지면 앞뒤 안 가리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 목표를 이루지만, 그다음 무엇을 해야 할지 혹은 이룩한 목표를 넘어 내가 지향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거나 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학원을 마치고 현재 직장에 입사할 때도 모두가 다니고 싶어 하는 좋은 회사였기에 자신도 목표를 정한 것일 뿐 회사에 들어가면 무엇을 할지, 이 회사에서 일함으로써 내가 목적하는 게 무엇인지 심사숙고하지 않았다. 월급도 많이 주고 각종 복지 혜택이 뛰어난 회사라 그럭저럭 다니면서 대리 진급까지 했으나 최근 들어 흥미도 의욕도 사라지면서 전에 느꼈던 감정들이 되풀이된 것이다. 다른 회사로 옮기거나 직종을 바뀌면 과연 이런 고충이나 구민이 사라질지의 의문이 든다.





의외로 우리 주변에서 정주행 대리 같은 고민에 빠진 사람이 많다.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자신이 목표했던 것들을 이루었지만, 그다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흥미와 의욕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른바 목적 없는 질주를 하는 사람들이다.

 제주도를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한다. 한 비행기 안에는 수십 명 이상의 사람이 타고 있다. 그러나 목적은 다 다르다. 목표는 제주도를 가는 거지만 목적은 전부 다르기에 비행하는 동안 각자가 느끼는 기분이나 감정도 각양각색이다. 여행이 목적인 사람은 마냥 즐겁고 흥분될 것이다. 집이 제주도라서 가는 사람은 부모님을 만날 생각에 흐뭇할 것이다. 시댁에 제사를 지내러 가는 며느리라면 고된 일을 앞두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답답할 수 있다. 업무상 출장을 가는 사람이라면 일거리를 거듭 확인하면서 긴장감이 밀려올 수 있다. 목적에 따라 기분과 감정이 이렇게나 다르다. 

너무 바쁘게 정신없이 살다 보면 지금 하는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옆이나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는 것이다. 비단 회사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그렇고 친구 사이에서도 그렇다. 사랑과 행복이 넘쳐나야 할 가정이나 우정과 의리가 중시되어야 할 친구 관계에서 본말이 전도되어 사소한 일에 연연하다가 더 큰 가치를 훼손하는 일을 종종 보게 되는 것은 대략 이런 이유에서다. 목표를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자잘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평생 긴밀한 관계를 유지 할 수 있다.



뭔가를 유지하는 데도 목적이 필요하다 유지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예가 다이어트인데, 다이어트의 목적이 뚜렷이 하면 원하는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커진다. 

'3개월 안에 몸무게를 10킬로그램 감량해야지.'

'한 달 내로 BMI(체질량지수)를 정상치까지 끌어내릴 거야.'

'근육량을 늘려 몸매가 탄탄해질 때까지 매일 한 시간씩 운동해야지.'

이런 건 전부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목표가 곧 목적은 아니다.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이루고자 하는 보다 큰 가치나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목적이다. '몸무게를 감량한 뒤 소개팅을 해서 원하는 짝을 만나야지.'

'BMI를 정상치로 만든 후 프로필 사진을 예쁘게 찍어 입사 원서를 작성하면 취업이 될 거야.'

'근육량을 늘려 몸매가 탄탄해지면 내가 원하던 브랜드의 멋진 옷을 꼭 사 입을 테야.'

이 같은 목적이 있어야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쉽고, 목표를 이룬 후에도 지치거나 마음이 바뀌거나 무료해지지 않을 수 있다. 목표지향보다 목적 지향이 더욱 중요하다. 목적이 불분명하거나 목적을 통해 긍정적인 기분이 떠오르지 않으면 한 가지 일을 오래 계속하기 어렵고, 목표를 성취하고 난 후에도 행복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뭘 한 건지 허무하기도 하고, 목표가 사라졌다는 데서 뜻하지 않은 불안감이 올 수도 있다. 매진해 오던 목표가 이미 달성됐기에 이제 앞으로 뭘 해야 할지를 몰라 무기력감에 빠질 우려도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거지?" 목적 없는 질주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럴 떄는 먼저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를 찬찬히 생각하고 찾아보는 게 필요하다. 목적이란 내가 이 행위를 왜 하는가에 관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어떤 미래를 그렸었는지 생각하자.

 정주행 대리 같은 경우, 자신이 이 직장을 선택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의 꿈이나 미래를 현재의 직장과 업무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연결고리 혹은 열쇠 같은 걸 발견할 수 있다. 섣불리 이직이나 퇴사를 결심하는 건 금물이다. 경험 많은 주변의 선배나 어른들과 의논하는 것도 좋다. 같은 길을 먼저 가본 사람이나 비슷한 고민을 먼저 해본 사람의 조언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해주는 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는 법이다.

 다음으로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내가 원하는 삶,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꿈꾸는 일을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생각하고 그려보고 설계하다 보면 현재의 직장이나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그 버킷리스트를 채우고 이룰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낼 수도 있다.

 종착점이 같더라도 이에 다다를 수 있는 길과 방법은 수없이 많다. 하나의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 오직 하나의 길뿐인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어떤 길로 가더라도 원하는 목적지에만 이를 수 있다면 현재 내가 다니는 직장이나 하는 일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희망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보는 건 해결책을 찾아가는 의미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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