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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슈드비 콤플렉스

by 감씨들 돌보미 202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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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에도 마음대로 쉴 수가 없어요



이비지 대리는 다음 주부터 휴가다. 기다리고 기다리면 휴가를 앞두고 그녀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스마트폰 안에 적어둔 일정표를 들여다보니 어느새 빼곡하다. 그동안 밀린 영어 공부도 해야 하고, 회사 다니면서 병행 중인 대학원 석사 논문도 써야 하고, 한참이나 만나지 못한 친구들도 봐야 한다. 그 밖에 또 뭘 해야 좋을까 틈틈이 궁리 중이다.

 그녀는 항상 바쁘다. 회사 출근할 때는 물론 휴가 중일 때도 마찬가지다. 바쁜 건 그녀의 일상이다.

그녀 사전에 한가함이나 무료함 같은 단어는 없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때도 주식이나 부동산 관련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고, 퇴근 후에는 영어 학원에 갔다가 헬스클럽을 들른 후 집에 들어온다.

늦게 저녁을 챙겨 먹은 다음에는 줌으로 독서 동아리 모임에 참여해 지식과 정보도 얻고 수다도 떤다. 주말에는 젊은 직장인들로 구성된 산악회에 참가해 서울 근교 산을 오르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랜다. 날이 궂어 산에 가지 못할 때는 미뤄둔 숙제를 하느라 분주하다. 안 해도 되지만, 시간 날 때 하려고 기록해둔 스스로 부과한 그녀만의 숙제 또한 장난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월요일 회사에 출근하면 가뿐하고 의욕이 샘솟아야 할 텐데 목요일이나 금요일인 것처럼 노곤하고 기운이 없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렇게 사는 게 습관이 됐다. 할 일이 없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생활 리듬이 깨지는 것 같고, 혼자만 경쟁에서 뒤처지는 듯해서 불안하다. 정 할 게 없으면 뭐라도 만들어서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회사에서는 그녀를 열정과 패기로 똘똘 뭉친 슈퍼우먼이라고 추켜세운다.







이비지 대리 같은 사람을 ' 슈드비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이라고 부른다.' 항상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가진 사람들이다. 꼭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고 이렇게 바쁘게 사는 건 아니다. 주변에서 대단하다고 이야기하거나 멋지다고 칭찬하지만, 그런 소리를 듣고 싶어서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고 싶은 것뿐이다.

 시간을 낭비하는 건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한시라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만약 생산적이지 않은 일로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하면 자기 자신을 비난하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음 날 더 바쁜 계획을 세운다.

이렇게 살다 보면 내가 세운 계획을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모든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기에 하루하루 시험을 보는 기분으로 살 수밖에 없다. 브레이크 없이 액셀러레이터만 밟다 보니 한순간 ' 번아웃'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슈드비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은 번아웃으로 병가를 쓰게 되었음에도 두리번거리며 뭔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는다. 너무 일을 많이 하면서 바쁘게 산 결과 번아웃이 와서 쉬는 건데도, 몸이 따르지 않아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쉬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독하게 마음먹고 나도 한번 쉬어보자고 생각하면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쉬는 것도 강박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면 될 텐데 이게 잘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정말 꼼짝도 하지 않고 쉬는 게 자신의 과업이자 숙제가 된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에도 등급을 매겨 평가하려고 든다. 뭘 열심히 하는 것보다 이렇게 쉬는 게 더 난도가 높다.

"뭔가를 해야만 한다."

이 같은 강박관념은 점점 자신의 행동반경을 옥죄기에 이른다.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가 아니다. 뭔가를 한다는 것의 반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 해도 된다."

이것은 바른 방향이다. 뭐든 하면서 바쁘게 사는 게 삶의 방향이었던 사람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은 고문과 같다.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어느 한 가지에 얽매이지 말고 무엇이든 자유롭고 편안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이럴 때는 평소에도 해보지 않았던 걸 해보는 것이 좋다. 잘할 필요 없다. 잘하지 않아도 된다. 등급이나 점수는 필요치 않다. 하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던 것들, 비생산적인 것 같아서 망설였던 일들, 시간이 부족해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보는 것이다. 낚시도 가고, 자전거도 타고, 바둑도 두고, 캠핑도 떠나고, 요리를 배워보는 것도 괜찮다.

우연히 휴가 때 해본 짧은 경험이 취미가 되어 휴가가 끝난 뒤에도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처음 시작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들기에 보통 때는 시도조차 어려운 일이라도 휴가나 주말을 이용하면 큰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한번 해보고 나서 나에게 맞지 않는다거나 시큰둥해지면 그만둬도 상관없다. 뭔가를 시작핳면 꼭 오래도록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으로 이어진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취미 활동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 가지를 오랫동안 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적절한 취미를 잘 찾아낸다. 새로운 걸 시도하는데 두려움이 없고 취미를 찾는 것에 익숙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꼭 해야 하는 게 있다면 평소와 같은 수면 패턴을 유지하면서 하는 게 좋다. 하루 세 끼 식사도 꼬박꼬박하고, 매일 운동도 하는 등 일상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면서 하는 것이다. 과도한 몰입이나 집착을 막기 위해서다. 이렇게 꼭 챙겨야 할 기본적인 것은 챙기지 않고 반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주말이나 휴가니까 보상이 필요하다면서 억지로 평소보다 더 자려고 하고, 쉬지 않고 자꾸만 먹으려고 한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스스로 일상을 깨는 것이다. 

슈드비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주말과 휴가를 맞아 모처럼 푹 쉬기로 작정했는데, 그 쉼의 방향이 한 방향으로 치우쳐 오히려 생활 리듬을 깨뜨리거나 심한 피로감을 몰고 오는 수가 있다.

"이번 주말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잘 거야."

"올 휴가 때는 정말 꼼짝도 하지 않고 먹고 싶은 것 실컷 먹으면서 지낼 거야."

 이런 결심을 한 뒤 잠만 자고 먹기만 하면 온전한 쉼이 이루어질까? 더 힘들고, 더 지치며, 더 피곤이 몰려온다. 평소와 패턴이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다. 고단함이 쌓이고 쌓여 에너지가 고갈된다.

 다시 말해 결국 어떤 걸 해도 좋은데, 잘하지 않아도 된다. 늘 성공과 실패, 통과와 탈락이라는 기준을 만들어 놓고 자신의 모든 일을 거기에 꿰맞추려 하지 않아야 한다. 행복과 즐거움을 위해 시작한 일이 매번 시험과제처럼 되는 건 이 때문이다.

잘해야만 한다는 부담을 떨쳐버리고 강박을 놓아버리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진정한 자유를 맛볼 수 있게 된다. 

 뭔가를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것이 아까운 게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뭔가를 해야 하는 게 아까운 게 아니다. 운동선수가 한 쿼터를 끝내고 다음 쿼터를 시작하기 전까지 쉬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경기를 위한 준비다. 그 시간이 아깝다고 혼자 코트에 나가 뛸 이유가 없다. 다음 쿼터가 시작되었을 때 그 사람은 지쳐서 제대로 경기를 치를 수 없을 것이다. 쉴 때 쉬지 않았기 때문이다. 충분한 쉼을 갖는 건 마라톤 같은 인생에 꼭 필요한 시간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현자인 노자가 에서 '무위이무불위' 라고 말한 건 바로 이와 같은 의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고요와 정지가 바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에너지라는 말이다. 오히려 억지로 뭔가를 하려 하고, 자연을 거슬러 인위적인 것을 꾀하며, 과도한 욕망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는 것이야말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자신과 이웃을 힘들게 하고 자연의 순리를 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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